군생활 군대 이야기
나의 황금 같은 20대 초반을 보낸 군대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넌 군대 가서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였다. 그것에 대한 반발심이 있던 와중에 입시에 실패를 하게 되고 아버지에게 군대부터 다녀오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군대 가서 정신 개조를 하고 오라는 뜻이었는데 나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길로 가장 빨리 군대 가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 당시 가장 빨리 군대를 갈 수 있는 방법은 공용화기병, 해병대였다. 둘 다 지원 후 3개월 정도 후 입대가 가능했었는데 공용화기병, 해병대를 지원하였고 특히 해병대는 한번 지원할 때마다 1점 가산점을 준다고 해서 3번 연달아 지원을 하였다. 3번째 면접을 앞두고 첫번째 지원했을 때 결과가 나왔고 의외로 첫 번째 지원에 합격을 했다. 공용화기병도 입대 날짜가 나와 있었고 공용화기병 입대 한 달 정도 후에 해병대 입대 날짜가 잡혔다. 둘 중에 선택을 해야 했었고 빨리 숙제를 하고 싶은 마음에 공용화기병으로 입대하였다.
102 보충대
춘천 하면 닭갈비이기 때문에 닭갈비를 먹고 들어갔다. 입대 후 군용 물품들을 사이즈에 맞게 받았고 입고 왔던 개인 옷은 소포로 집으로 보냈다. 비가 많이 왔고 밥이 좀 맛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4일 정도 그곳에서 대기했다가 각 사단의 훈련소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102 보충대에서는 문신한 사람이나 몸이 안 좋은 사람들을 집으로 보냈고 집에 가는 사람들은 우리가 각 훈련소로 버스를 타고 떠날 때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주 근심 걱정 없는 얼굴들이었다.
훈련소 이야기
훈련소에서는 더웠던 기억밖에 없다. 7월에 입대를 했는데 강원도는 안 더울 줄 알았다. 근데 너무 너무 더웠다. 나는 나름 훈련들을 열심히 했으며 조교 중에 한 명이 조교 해보라고 권유를 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 있는데 훈련소에서는 식사 배분을 훈련병이 한다. 조교든 간부든 같이 식사 배분을 하는데 조교가 보이길래 살짝 반찬을 더 많이 줬던 것 같다. 근데 그 자리에서 조교가 나에게 한마디를 했었다. 너는 그런 사람 아닌줄 알았는데 실망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건 공정하게 반찬을 나눠야 하는데 조교라고 더 줘서 실망했다는 뜻 같았다. 그 조교가 날 좋게 봤던 것 같은 게 그 당시 고졸이었던 나에게 조교를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좀 의외였던 게 소대 30명 중에 고졸인 사람은 3명밖에 없었고 모두 전문대 이상 출신이었다.
이등병 이야기
훈련소를 마친 후 이등병이 되어서 자대에 갔는데 전형적인 구 막사였다. 자대 배치된 첫날 축구를 했는데 축구를 하다가 다른 소대의 병장과 몸싸움을 하다가 병장을 넘어트렸다. 그 병장은 손바닥에 피를 흘리고 욕을 했는데 내 옆에 있던 우리 분대 최고참이 와서 우리 분대의 인원은 건들지 말라며 나를 보호해 주었다. 이등병으로써 열심히 하는 모습도 보이고 군기 잡힌 모습을 보였더니 선임들도 나를 좋게 봐주었다. 그 당시에도 육군 5대 장성 중의 하나가 이등별이라는 얘기도 선임들이 했었는데 심한 내무부조리는 없었던 것 같다. 대체로 전방은 훈련이 힘들고 후방은 내무 생활이 힘들다는 얘기가 있다.
일병 이야기
일병이 되면 대체로 부대 돌아가는 것을 알고 제대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일만 많이 해서 일병이라는 말이 있다. 일병이 되고 기준 잡고 앞장서서 일을 하기도 하고 제대로 일을 했다. 이때 후임도 들어와서 혼자 힘들지는 않았고 후임과 같이 일을 해서 혼자 하는 것보다 덜 힘들었다. 후임이 바로 들어온 건 운이 좋았던 것 같았다.
상병 이야기
상병이 되고 일병 때 몸을 혹사시켜서 그런지 무릎이 점점 아파졌다. 무릎을 다치게 된 계기는 축구를 하다가 그런 것 같은데 장비를 많이 차고 산을 많이 타다가 보니 무릎이 점점 안 좋아졌고 축구는 하나의 계기가 됐을 뿐인 것 같다. 이때 구 막사에서 신막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한 개 침상에서 10명씩 자던 곳에서 2층 침대의 2층에 올라가니 너무 좋았다. 개별 공간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름에 땀냄새나는 선임이 옆에서 자면 정말 곤욕이었는데 개별 침상은 너무 좋았다.
병장 이야기
병장을 달자마자 분대장을 달았다. 내가 있던 곳은 분대장 1개월 당 말년휴가에 하루를 붙여줬다. 나는 분대장을 5개월을 했기 때문에 말년휴가를 15일을 가게 되었다. 그 당시 2006년 월드컵 시즌이었는데 우리나라 3개 게임 모두를 밖에서 보게 되었다.
군대 연예인 이야기
내가 상병을 달 때쯤에 송승헌과 장혁의 병역비리 뉴스가 나왔고 괘씸죄로 우리 사단에 배치된다고 들었다. 내심 내 군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건가 했었는데 내가 있던 부대로는 오지 않았다. 그들과 동기였던 후임에게 들은 얘기는 송승헌 몸이 진짜 좋다는 얘기와 장혁이 정말 군생활을 열심히 하고 솔선수범을 했다는 얘기였다.
사회생활에 대한 미련이 없던 적절한 시기에 군대를 일찍 다녀오기를 잘했던 것 같다. 축구로 2번, 중대 골든벨 대회에서 우승해서 휴가 1번 이렇게 휴가도 적당히 받았던 것 같다. 선임들 후임들을 언젠가 한번 만나고 싶다. 2년 동안 밖에서 자며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이라 기억이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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